그곳에 갔더니 거기엔 무소불위의 대대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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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4개월 남기고 생각보다 빨리 온 후임 소대장. 인사 문제가 꼬인 모양이다. 이렇게 빨리 굴러오는데 어쩌겠나, 박힌 돌은 얌전히 비켜줘야지. 2년 남짓 키워놓은 소대원들, 얼굴 한번 더 보면 그만큼 정 더 들까, 그들이 잠든 사이에 야반도주하듯 정든 부대를 나왔다.
연대에 가니 나를 모시러 온 녀석이 있다. 앞으로 허드렛일 감당해 줄 아주 귀한 일꾼이니 당연히 모시러 와야지. 삼십 분쯤 가니 내가 4개월 동안 묵을 을씨년스러운 부대가 보인다. 그때 예감했어야 했다. 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정돈된 부대와 그 안을 거니는 로봇같은 사내들의 무표정에서, 왜 어떠한 횡포도 예감하지 못했을까. 군 생활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사회 진출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강제전출 당하면서 어떠한 의욕도 가질 수 없었던 나의 무기력함 때문이리라.
인사과장 보직을 받았다. 말이 인사과장이지 인사업무를 하는 장교는 따로 있었다. 4개월이면 업무를 배울때 쯤 되어 전역할 텐데, 그러느니 다른 일을 하라는 게 부대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지휘통제실에서 상황근무를 서면서, 작전과장의 업무를 돕고, 일손이 필요할 땐 각 중대에 가서 일을 돕고, 외출할 일 있으면 차량에 선탑을 했다가, 배수로가 막히면 그것을 뚫고, 대대장이 편지 보낼 일이 있으면 우체국엘 다녀오고, 부대 진입로의 잡초를 뽑다가, ……. 계속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만큼 다양하고 영양가 없는 일들을 많이 했다. 한마디로 중책은 아니되, 병사 혼자 시키기엔 책임을 지워줘야 하는 자리. 말년 중위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새 부대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것이, 대대장의 고약한 성질이었다. 그는, 좋게 보면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 정신의 끝판왕이었고, 나쁘게 보면 인간을 개 부리듯 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완벽한 부대 운영이랍시고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은 휴일에도 열두 시간씩 작업을 했고, 간부들은 자정 넘어 퇴근하는 게 다반사였다. 훈련에 필요한 물자라면 어떻게든 구해와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여서 부하들은 밖에 나가서 장비를 훔쳐오기도 하였고 (잘했다는 게 절대 아니지만, 대대장의 암묵적인 지시에 대항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는 것), 어쩌다가 밖에서 차량 사고가 나도 부대에 사고기록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그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 때문에 보험처리도 못하고 그 합의금의 몫은 고스란히 간부들에게 전가되었다. 장병들의 안위보다 키우는 난초의 여린 자태가 더 중요하였고, 장병들의 인격보다 본인의 명예진급이 더 우선하였다. 부하들이 떠받치고 뼈를 깎고 죽어나갈 때, 그는 대대장실 안에서 호의호식하며 얼마나 태평한 시간을 보냈는지.
내가 전역을 이틀 앞둔 날 밤, 선배 중대장들이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 부탁을 하였다. 저 폭군 좀 찌르고 가라고. 명색이 인사과장인데, 부대의 인력들이 저리 인간 대접 못받고 있는데, 앞으로 얼굴 안 볼 네가 총대 좀 메라는 눈빛이었다. 나도 안 그래도 별의 별 생각 다 하고 있던 참인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국방부에 투고하고, 대대장실 찾아가서 담판을 지을까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 랬. 는. 데. 결국 나는 더러운 꼴 보기 싫다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낙엽을 피해다니며, 이틀 동안 숨만 쉬다가 부대 밖으로 나왔다. '그래, 너라도 조용히 나가야지' 위병소에서 힘없이 손 흔드는 선배들의 기운 없음이 생각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횡포는 더욱 더 심해져, 장병들은 착취되고, 대대장은 훗날 대령으로 진급하고 누가 보기엔 명예롭게 전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나고 나니 그때 그 일들이 작은 소동처럼 느껴지지만, 그땐 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I would prefer no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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