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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한때의

행렬

by 새 타작기 2018. 1. 17.
기억인지 상상인지 모르겠다. 매캐하다.

어려서 한 여대 옆 3층 높이 빌라에 살았다. 동네 구석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학교가 내게는 놀이터였다. 학교 테니스장 옹벽에 공을 던지고 다시 받다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발길이 뜸한 겨울 교정에는 눈이 수북히 쌓였고 나는 그 눈을 처음 밟는 게 어렵지 않았다. 카톨릭 학교인지라 인자해 보이는 수녀들이 수시로 오다녔고 미국사람인 줄만 알았던 벨기에 수녀는 또 얼마나 다정하게 인사해주었던지.

어느 날부턴가 학교 주변이 시끄러워졌었다. 그 즈음해서 엄마는 나보고 밖에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시끄러운 함성과 그 후에 터져나오는 둔탁한 소리. 아빠 따라 올라간 옥상에서 아무리 까치발을 서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눈은 따끔거리고 고약한 냄새가 콧속을 때린다. 파란 하늘엔 아무 연기도 없는데. 누가 고추를 빻았나.

그때 나보다 조금 컸던 형은 골목에서 가끔 위아래 청청들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후에 알고보니 퍼런 사람들은 백골단이었다 한다. 엄마 아빠도 그들을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저들이 동네를 휘젓고 다녀도 무섭지는 않았다는데, 그건 저들이 오히려 '성난 대학생',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위나 해대는 치기어린 젊은이들을 선도해줄 선한 공권력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실이었단다, 그때는.

그때 그 시위가 무엇을 외치던 건지는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이제서야 나의 기억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질 뿐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사뭇 자랑스러워지는 건, 아버지 무등을 탄 네 살짜리 꼬마도 코끝의 매콤함으로 엄연히 그 행렬에 동참했었다는 사실 때문이겠지.

-1980년대 후반, 아마도 그 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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