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좀 해"
출근길 혼잡한 아침 지하철, 조용한 가운데 특히나 조용히 있던 내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고약하게 생긴 아저씨가 순간 버럭했다. 난 분명 입 뻥끗 않고 있었는데. 몇 마디 섞어보니 내 코가 조용히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겨울에 쾌쾌한 객실 공기에 게다가 비염까지 내가 훌쩍이지 않을 방법은 도무지 없었으나, 아무튼 아저씨는 그 코 좀 제발 조용히 시키라고 이른 아침부터 생면부지 화를 냈다. 공공장소에서 이 많은 사람들에 얼마나 민폐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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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가는 남자애들은 굉장히 본능적이다. 딱 일 초 눈만 쳐다봐도 쟤가 날 이길 앤지, 내가 이길 앤지 알 수 있다. 덩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뭔가 모를 뭔가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나는 힘이 없고 작은 아이였다. 초식동물같았다. 지우개 빌려달라는 말도 할 줄 몰라 틀린 글자를 손으로 지운 적도 있을 만큼 소심했다. 그런 나에게도 만만한 존재는 있었다. S와 H. 아, 쟤네 둘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겠다.
어설프게나마 나의 대장놀이는 모두의 눈을 피해 이어졌다. 종일 움츠렸던 걸 둘 앞에서 터뜨리고는 했다. 그런데 대장도 해본 녀석이 잘 한다고 나는 어찌나 되도 않는 걸로 괴롭혔는지. 하루는 S가 수업시간에 쉴 새없이 훌쩍였고 그 소리가 내게 그렇게 거슬렸다. 3교시쯤 끝나고였나 쉬는 시간에 불러다, 앞으로 한 번만 코 먹는 소리내면 죽인다고 협박을 했다. 무려 죽인다고. 4교시 시작하고 S는 최선을 다해 소리내기를 참는데 콧물은 주륵주륵 흐르고, 휴지로 콧물을 찍어내긴 하는데 그게 멈출 리가 있나. 참다 참다 못해 큰 소리로 코를 힘껏 들이마쉰 S는 그 후로 훨씬 빠른 주기로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고 경쾌하게 그르렁그르렁거렸다. 비염에 고생하다가 급기야 나중에 수술까지 한 나는 이제는 그때 그 협박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훌쩍거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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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큰 지금도 난 훌쩍거린다. 수술도 소용이 없다. 아침에 말도 안되는 주문을 한 아저씨와 꽤 길게 말다툼을 했다. 언성 높여 몇 마디 하고 나니 정말 민폐가 되어버렸다. 좀 더 세련되게 대응했다면 좋으련만. 아저씨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사람마다 유독 예민한 부분이 있다. 한번 싫으면 싫은 그것만 보인다. 왁자지껄한 교실 안에서도 저 멀리 미세한 훌쩍소리만 들렸던 나처럼.
버럭하느냐 티슈 한 장 뽑아 무심히 건네주느냐, 정말 한 끝 차이다. 화내는 게 훨씬 쉽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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