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환절기를 지나 온 지금, 지난 절기들을 되돌아본다. 환절기를 하나씩 넘을때마다 당신의 것들을 새롭게 하나하나 알아왔고, '이 사람과 계속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을 조금씩 지워왔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호감이라면 모를까. 몇 번의 절기들을 거치면서 서로의 끝을 보고도 서로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 때, 어쩌면 그때부터 '사랑하는 게 맞나보다'고 말할 수 있나보다,고 말할 수 있나보다.
***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ㅡ「환절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 준
'거짓말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한 자가 문득」 : 궤도 (0) | 2015.12.08 |
---|---|
「오징어」 : 빛 (0) | 2015.12.07 |
「조용한 일」 : 고마운 일 (0) | 2015.10.23 |
「삼십대」: 일부러 내 반경으로 (0) | 2015.10.21 |
「슬픔의 진화」 : 모서리 (0) | 2015.10.14 |
댓글